[ 형이상학 ]
* 유 래
- 형이상학의 시작은 ‘모든 인간은 본래 앎을 갈망한다’는 명제에서부터 시작한다.
- 단순히 인간이 세계에 대해 알려고 하는 보편적 지식을 넘어 ‘사물의 존재’와 ‘세계’ 그리고 이것들과 항상 더불어 있는 ‘인간’과의 관계를 규정함으로서 모든 존재자의 존재 및 존재 원인등을 논리적, 체계적으로 밝혀 서술해 내려는데 있다.
- 자신의 이 저서를 ‘제1철학’이라고 불렀는데 아리스토텔레스 사후 300년이 지나 그의 주석가였던 아니드로니코스는 저서를 편찬하기 위해 정리작업을 할 때 제목없이 14권(존재에 관한)으로 쓰여진 제1철학의 원고들을 자연학(physica) 뒤(meta)에 배열하였고 ‘metaphysica‘라고 명명함으로써 비롯된 것이라고 알려져 있다.
- 형이사학이란 개별 과학자들이외의 또다른 하나의 과학, 즉 표제없는 자연학 다음의 저서를 일컫는데 즉 자연학을 넘어선 자연의 배후세계를 논의하는 학문분야라고도 볼 수 있다. 그래서 자연적 사물의 배후, 즉 경험적 대상을 초월한 초감성적 세계를 다루는것을 의미 했다.
쉽게 설명하면 경제학, 물리학등이 있는데 이러한 학문은 그 현상의 배후에 있는 원리를 탐구하는데 예를들어 경제학의 경우는 경제현상을 일이키는 경제원리에 대해 탐구하고 물리학은 물리현상의 원인이되는 물리법칙을 탐구하는 것이라면 형이상학은 세계에 존재하는 존재자의 배후, 최초의 궁극적 근거를 탐고하는 학문이다. 형이상학적 사유는 훗날 모든 분과학들의 기초를 제공했기에 기초연구론이 형이상학에서 정립됨으로 지금의 분과학들을 접할수 있게 된 것이다. 여기서 분과학이란 현상에 대한 순간적이고 즉흥적인 탐구가 아닌, 그 현상의 기저에 자리한 원인, 원리에 대해 탐구하는 연구론을 말한다.
- 구분 : 일반 형이상학, 특수 형이상학.
⦁일반형이상학:존재론으로서 존재자와 관련된 형상과 질료, 운동의 원인및목적 등을 다루는것.
⦁특수형이상학:'존재론'을 넘어 신(神)과 영혼, 시․공간적 세계(kosmos)등의 개념에 관한 것.
- 형이상학의 본래적인 성격인 `모든 사물의 제일원리'라고 규정할수 있으며, 존재하는 물체 및 실체, 그리고 기체등의 개념들은 물론, 변화와 운동으로서의 가능태와 현실태로서의 모든 자연을 넘어서는 '초월적인 자연'의 문제에까지 필연적으로 연결되는 개념.
아리스토텔리스는 책에도 나왔지만 자연적으로 있게 되는 목적론적 관점을 ‘있는 그대로의 자연’을 기술하는데 있었고, 궁극적으로 자연의 진행과정을 목적론으로 설명하였다
* 형상과 질료
- 플라톤의 이데아론을 형상과 질료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틀을 짰다. 질료를 떠나서 독자적으로 존재하지 않고 개채적 실체 속에서 질료와 결합되어 있다는 점에서 구별이 된다.
- 형상은 질료보다 근본적인 실체이다. 이것은 존재하는 모든실체는 질료가 형상을 입은 것. 질료는 형상을 통해서만 알려질수 있고 형상보다 실체일수 없다 ex)칠판의 질료는 분할가능. 칠판이라는 형상자체는 분할 불가능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실체란 개별적으로 분할불가능하며, 분리된 것으로 그자체로 존재하는 것을 의미하는데 그리스어로 우시아라고 한다.
- 존재하는 모든 것은 모두 질료와 형상의 조화속에서 생성.
- 구분하는 의도 : 변화의 발전과정을 목적론적으로 설명하기위한 개념
- 현실태와 잠재태.
⦁모든 양태는 질료로부터 형상으로 전개되는 과정. ex)질료:도토리 - 목적 → 형상:참나무
⦁변화의 궁긍적인 양태는 잠재태→현실태로의 변화
⦁자연의원리는 목적으로서의 원인. 운동과 변화의 근원.
자연적으로 있게 되는것에는 목적이 작용하고 있으며 자연속의 원리로 인해 지속적인 운동을 통해 목적에 도달
⦁현실적인 어떤사물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질료로부터 형상으로의 변화가 있을수 없다.
ex)어린소년이 잠재적인 어른이지만 그러한 가능태를 지닌 소년이 있으려면 우선 현실적인 어른이 먼저 존재해야한다
⦁형상은 생성에 관해서 볼 경우 현실태이며 존재와 인식의 관점에서 보면 실재적이고 본질적으로 인식가능한 것.
- 순수형상 : 어떤질료도 갖지 않으며 존재의 최고 수준에 있는것. = 부동의 원동자 = 운동하게 되는 모든 것들에 대해서 최초로 운동하는것 (스스로움직이지않으면서 다른것움직이게하는존재)
- 부동의 원동자 :
⦁행위가 순수하게 영적이고 지적인것이어야 함.
⦁영원한 직관이나 자기의식의 행위속에서 자신을 알고자하여 사유의사유 라고 정의할수 있다.
⦁세계에 대해 사유하지만 세계에목적을 부여하는 신적인존재는 아니다→질료가없는 신적요소
* 운동의 4원인설
운동이나 생성은 질료와 형상이외 동력과 목적이라는 원인이 있어야한다.
플라톤의 목적론적 사고가 형이상학의 중심주제로 삼고 있다.
- 형상인 : 그대상은 그형상에 따라규정. 어떤질료를 갖고 만들고자하는 사물의 모양이나 형체
ex) 계획에 따라 설계한 건축물
- 질료인 : 그대상은 질료로 이루어진다. 무엇으로 될 어떤 소재나 자료. 운동이 시작되는 근본
ex) 청동으로 동상이 만들어지는것.
- 동력인 : 질료를 갖고 어떤 형상을 만들어내는데 소요되는 힘이나 노력.
무엇인가만들거나변화시키는사람이 이에 해당된다
ex)조각상을 새기는 조각가, 환자를 치료하는 의사, 아이를보는 아버지
- 목적인 : 질료로써 그러한 형상을 만들어내는 의도나 목적.
ex) 산책을하는이유 : 건강을 유지하기위해서..
* 미메시스
- 그리스어로 춤 · 몸짓 · 얼굴표정 등에 의해서 인간 · 신 · 사물 등을 모방하는 것을 의미.
- 시학 : 모방한다는 것은 인간 본성에 내재한 것이요. 인간이 다른 동물과 다른점도 그가 가장 모방을 잘하고 그이 지식도 모방에 의하여 획득하기 시작한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모방된 것에 대해 모든 인간이 희열을 느낀다는 것도 인간의 본성에 속합니다.
- 인간이 어린시절부터 가지고 있는 본성. (성격,심정, 음악과 같은 내면상태)
미적인것에 연관되기 이전부터 삶의 기본 사실이자 인간에게 즐거움을 가져다주는 기술.
모방을 통해 사물을 배우게 되기 때문에 본성이다.
- 사물의 고유한 본질은 질료안에 형상을 갖고 있으며 모든 물질은 그 형상을 자신의 현실태에로 도달 → 예술적 모방은 실제적인것을 모방하여 형상화되고 실제적인 것이 예술적 창조의 정당한 출발점.
- 문학=모방(있는그대로가 아닌 더 아름답거나 더 추하게 묘사 할수있어야). 다양한 종류의 문학과 구분하여 그 종류에 대해 정의를 내림. 그 (음학, 조형예술, 서사시, 비극, 희극)
- 예술을 토대로 삶을 중요시하였고인간의 능력을 신장시키는 삶의 기능임을 강조.
- 분류 : 모방의 매체, 모방의 대상, 모방의 방식
매체-리듬,언어,음조(즐거움을주는언어) /대상-행위하는사람이 행위를 모방하는것(훌륭한행위) /방식-서술체,이야기체를 연기하게끔 맡기는것(모방을연기하는것)
-비극 : 비극론에서 모방이란말을 주로사용하며 시학에서 제일중요하게 다루어지고 있는 장르.
다른시예술보다 더 훌륭하게 시적 효과를 성취할수 있다.
진지하고 일정한 간격을 유지한 채 완결된 행위를 모방하는 것.
모방의 대상은 인간의 행동, 삶과 불행 → 행위의 창조적 모방으로 나타남.
완숙한 깊이의 훌륭한 행위를 모방 → 연기의 의존함으로 연민과 공포를 표현하여 정서적인 정화를 성취.
*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미메시스
플라톤은 감성계의 개별적 사물은 참된 실재인 이데아의 모방이라고 하고 이데아보다 낮은 차원으로 생각하였다. 그는 예술도 모방으로 이해하여 이데아의 영상이라고 하고 감성계의 모방에 불과한 것이라고 하여 예술을 멸시하였다. 아리스토텔레스도 예술을 모방이라고 하였지만, 언어, 리듬 등을 매개로 하여 모방을 하는 예술(서사시, 서정시, 비극, 희극, 무용, 음악 등)은 '성격이나 정서나 행위', 요컨대 인간의 마음의 내부를 모방하는 것이고, 개별적인 사태를 재현하는 경우에도 역사와는 달리 '개연적으로든지 필연적으로든지 발생할 수 있는 사태'를 이야기하는 것이며, 개별성은 보편적인 것을 구체화하는 것으로 보았기 때문에, 그에게는 예술의 멸시는 보이지 않는다. 또한 그는 모방하는 것과 모방된 것을 즐거워 하는 것은 인간에게 자연적으로 갖춰져 있는 것이라고 하여 여기에서 예술의 유래를 구하였다.
[최선의 삶이란?]
아리스토텔레스가 던지는 물음 중 하나는 “최선의 삶이란 어떤 것인가?” 라는 것이다. 이것은 ‘에우다이모니아eudaimonia’의 문제인데, 이 말은 ‘행복’이란 뜻이다. 무엇이 진정으로 행복한 삶일까? 식물이나 동물도 성장하고 운동하며 느낀다. 그러므로 이런 것만으로는 인간에게 행복을 가져다 줄 수 없다. 그렇다면 오로지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본질이 최선의 삶의 요건이 될 텐데, 그것은 곧 이성logos이다. 그래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이성을 충분히 실현하는 삶이야말로 인간적 삶이며, 인간으로서의 아레테를 실현하고 행복을 누리는 삶이라고 결론 내린다.
인간적 삶이란 “이성과 합치하는(또는 이성과 함께하는) 영혼의 활동”이다. 그러나 여기에 “전 생애에 걸쳐서”라는 조건이 추가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제비가 한 마리 날아왔다고 해서 봄이 온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무엇이든 지나치지 않게”라는 델포이 신전의 격언을 다듬어 중용(中庸)사상을 전개했다. 예컨대 용기는 비겁과 만용의 중용이다. 중용은 중간이 아니다. 따라서 그것은 합리적 계산을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오랜 세월에 걸쳐 조금씩 형성되는 지혜에 가깝다 할 수 있다. 또한 최고 높은 위치의 형상은 행복이라고 보고 세상의 모든 사물과 행동은 행복이라는 형이상학적 존재를 이루기 위한 수단이 되는것이다. 모든사물과 행동들은 인간 이성의 기능을 잘 발휘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고, 바로 그것이 행복이고 행복은 형이상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