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 철학 연습 ] 3. 스토아학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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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김은정(enj0602) | 작성일 | 2012-12-31 | 조회수 | 42650 |
첨부파일 | 3._스토아학파_.hwp | ||||
3. 스토아 학파
아파테이아apatheia
# 창시자 ; 제논
키프로스섬 키티온 출생. 페니키아인의 혈동으로 추정. 30세경에 아테네로 가서, 각 학파의 여러 스승 에게 배운뒤에, 독자적인 학파를 열어 아고라(agora:집회장,중앙광장)에 있는 ‘채색 주랑’ 이라고 불리는 공회당에서 철학을 강의하였다. 주랑을 스토아라 하므로 스토아학파라는 이름이 생겼다.
그의 철학은 절욕과 견인을 가르치는 것이었으며, 사람이 자기 힘으로 살며, 다른 누구에게도, 어떤 일에도 빼앗기지 않는 행복을 얻는 힘을 부여하는 철학이었다. ‘자연과 일치된 삶’이 그 목표였다.
전통적인 여러 철학의 학설을 종합하여 풀이하였기 때문에 절충의 흠은 있지만, 그 설의 근본에는 동 방의 요소가 있다고 믿었으며, 이 독자성 때문에 순수한 그리스인 이외의 제지들을 많이 모아, 새로운 헬레니즘 시대를 대표하는 철학으로 발전하였다. 또한 윤리학이 중심이며, 인생의 목표인 행복은 우주 를 신의 이성즉 로고스를 따르는 일이었고, 이로써 부동심의 경지에 이르는 것이라고 풀이하였다.
# 스토아학파 ; BC 3세기부터 로마 제정말에 이르는 후기 고대를 대표한다. 키프로스섬 태생의 제논이 창시.
초기 대표자-클레안테스, 크리시포스
중기 대표자- 파나이티오스, 포세이도니오스
후기 대표자- 정치가 세네카, 노예 신분이었던 에픽테토스,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등이 활약
이들 대표자들이 그렇듯이 고전기 그리스를 대표하는 여러 나라의 좋은 가문 출신 사람들의 철학이 아니라, 변경 사람들이나 이국인의 철학이었으며, 그리스 문물이 좁은 도시국가의 틀을 넘어서 널리 지중해연안의 여러 지방에 미친 헬레니즘 시대를 대표하는 철학이었다. 그러므로 전통 적인 철학의 여러 파와 스토아파 사이의 대립은 격렬하였다.
* 크세노크라케스의 분류에 따라 철학을 세 가지로 분류
- 논리학 ; 정원을 보호하는 울타리, 형식논리뿐 아니라 인식론과 의미론, 문장론을 포함
로고스(말과 이성)를 소재로 삼음.
- 자연학 ; 위로 자라나는 나무
신학도 자연학에 포함시키는 사변적인 자연철학
- 윤리학 ; 정원의 열매
이론적 도덕가, 실천적 도덕가
윤리적 개념을 분석, 인간의 최선의 삶인 인간의 행복의 토대가 무엇인지를 보여주기 위한 예비단계
* 스토아학파의 사상
- 범신론적 사상 ; 세계는 신의 육체, 신은 세계의 영혼 , 신은 물질과 결합되어 있는 이성이다. 자연학설을 바탕으로 실천적 지혜를 주장, 즉 지혜는 ‘신과 일과 사람의 일에 관한 지식’ 이라고 정의 되지만, 이것은 사물에 관한 관조적지식이 아니라 인간생활에서의 모든 것을 올바르게 처리하기위한 실천적 지식이다.
- 아파테이아(Apatheia) ; 외부의 어떠한 어려움이나 고통에도 마음이 동요되지 않는 초연한 무감동의 경지, 즉 이성적인 극기와 금욕에 의하여 감정과 욕구를 억누를 부동심의 상태
그것이 현자의 생활이요,인간의 최고선이며 덕의 근본
- 세계주의(Kosmopolitanism)주장 ; 세계는 우리의 도시, 모든 인간은 시민, 모든 인류는 세계적 이성 의 일부로서 종족,혈통,빈부,귀천에 관계없이 이성적 공동생활을 영위해야한다 주장
자신의 헌신을 통해 자신이 속한 공동체와 전 인류에로 확대할 것을 주장
스토아학파는 세계이성의 의도를 파악함으로써 자신의 처지에 대해 기뻐하거나 슬퍼 할 이유가 없음을 알게 되는 상태를 이상적인 상태로 봄.
세계는 세계이성의 의도대로 계속 진행될 것이므로 세계이성의 의도 이외의 것을 바 라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라함.
*에피쿠로스와 스토아학파의 비교
스토아 학파와 에피쿠로스 학파가 세계의 현실을 파악한 바는 비슷하다. 스토아 학파에게도 삶이란 힘겨운 것이며 세상은 적의로 가득 차 있다. 그러나 스토아 학파의 처방은 에피쿠로스 학파와 대조적이다. 에피쿠로스 학파가 개인적인 안심(安心)을 추구했다면, 스토아학파는 삶에 대한 강인한 의무(義務)를 추구했다. 개인적인 욕망, 감성, 편견에 휘둘리는 것이 인간이다. 스토아학파는 이런 현실을 뚫고 나가 이성적이고 용기 있는 삶을 살라고 권한다. “하늘이 무너져도 그대의 의무를 다하라.” 그러나 에피쿠로스학파는 관용과 우애를 역설할 뿐 스토아적 의무를 이야기하지는 않았다. 다만 평온한 사람은 타인에게 해를 입히지 않으며 따라서 정치적으로도 훌륭한 사람이라고 보았다. 평온한 삶은 곧 정의로운 삶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불의(不義)에 대한 적극적인 대처는 찾아보기 힘들다. 오히려 에피쿠로스학파는 쾌락과 고통에 대한 신중한 계산을 강조한다.(훗날의 공리주의로 이어짐) 스토아학파는 형이상학적 자연철학에 근거에 열정적인 의무의 철학을 제시했다면, 에피쿠로스학파는 완벽한 탈 신비주의를 보여주는 자연철학에 근거해 소극적인 안심(安心)의 철학을 제시했다. 미묘한 엇갈림을 보여준다. 그러나 유물론이라는 점에서 공통되며, 로마적 철학을 추구했다는 것도 공통적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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