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의료생협 치과 개원 준비, 환자입장서 증상과 치료법 안내 진료비도 합리적
치과에 가려고 하면 겁이 나잖아요. 아프기도 하고 비용도 비싸니 말입니다. 환자들은 믿을 만한 치과의사가 있으면 거리가 멀더라도 찾아다니잖아요. 적절하면서도 저렴한 진료를 할 수 있는 치과가 필요하다는 겁니다.”
대전지역에서 주민이 주인인 치과의원 개설을 준비하고 있는 신현정 대전민들레의료생활협동조합(대전의료생협) 치과개설준비위원장의 이야기다. 대전의료생협은 의료 및 건강과 관련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역주민과 의료인이 함께 개설한 협동조합으로 2002년 4월 양·한방의원의 문을 열었다. 현재 치과의원 개원을 준비하고 있는데 예정일은 6월 15일이다. 대전의료생협이 치과의원 개원을 추진하는 것은 조합원의 요구 때문이었다. 신 위원장의 이야기처럼 믿고 갈 수 있는 치과가 필요하다는 것.
치과는 일반 병원과 달리 의료보험이 적용되는 부분이 적어 고가의 치료가 많을 뿐 아니라 관련 정보를 얻을 만한 통로가 적어 정보의 비대칭성이 큰 분야 중 하나다. 의사가 이끄는 대로 따라갈 가능성이 높은 셈이다. 적절한 치료가 이뤄진다면 좋겠지만 모든 치과의사가 그런 것은 아니다. 치과의사들의 이야기에 따르면 마진이 높은 비싼 재료를 사용하는 치료법을 중심으로 설명하는 등 과잉진료를 하는 치과병원이 있다. ‘수익 챙기기’를 하는 셈이다.
틀니 비용 200만~700만 원 천차만별
한 치과병원을 찾아가봤다. 수년 전 어금니의 충치를 치료한 것에 문제가 생겨 종종 통증을 느껴 온 기자에게 ‘어금니를 못 쓰게 됐으니 갈아내고 의치로 덧씌워야 한다’는 진단을 내놓았다. 다른 치료법은 이야기도 하지 않았고, 어디가 어떻게 됐으니 이런 치료가 필요하다는 등의 설명조차 없었다.
다른 치과를 찾아가봤다. 이번에는 달랐다. 어금니에 문제가 있을 수도 있지만 충치치료가 잘못된 것일 수도 있으니 다시 충치치료를 해보자고 했다. 의치치료가 필요한지 여부는 그 뒤에 판단해도 늦지 않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치아가 이런 상태라 통증이 있을 수 있으니 이런 치료를 할 수 있고, 다른 치료를 해도 된다’는 설명이 뒤따랐다. 충치치료를 받고 난 뒤, 전에 느꼈던 통증은 사라졌다. 만약 처음 찾아갔던 치과에서 권유하는 대로 치료를 받았다면 비용도 비용이지만, 소중한 치아 하나를 갈아없앨 뻔했다.
최근 한 방송사가 보도한 내용을 보면 치과병원 간의 차이가 크다는 점을 잘 알 수 있다. 한 할머니와 동행, 틀니가격을 알아봤는데 지역에 따라 200만~700만 원까지 차이가 났다. 치과협회가 밝힌 틀니 시술의 평균원가표에 따르면 한쪽 틀니 원가 30만 원에 인건비 37만 원, 기타 부대비용을 합쳐 105만 원 정도라고 한다. 위아래 틀니를 할 경우 210만 원에 불과하다. 치과의사의 숙련도에 따라서 가격이 다를 수 있다는 점은 인정하지만 500만 원의 차이가 적당한 것인지에 대한 의문은 여전히 남는다. 일부 치과병원은 환자를 돈으로 보고 있는 셈이다.
모든 치과가 이렇다는 것은 아니다. 기자가 두 번째로 찾은 치과처럼 증상과 치료법을 친절하게 설명해주는 곳도 있다. 하지만 고가치료로 유도하기 위해서거나 혹은 치료법을 몰라 실력이 없다는 소문이 나는 것이 두려워 모든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이런 일부 치과병원 때문에 신뢰 문제가 생긴다.
게다가 현재 치과의 운영은 예방이 아닌 치료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 예방에 대해 금전적인 보상이 없는 상황에서 이를 요구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치과 환자 중 많은 수가 칫솔질만 제대로 했다면 치과를 찾지 않아도 된다는 점을 상기해보면 예방의 중요성을 간과할 수는 없다.
의료생협 치과는 이런 체제에 대한 문제제기인 셈이다. 생협치과는 조합원의 출자금으로 만들어진다. 병원에서 근무하는 의사는 조합으로부터 월급을 받는다. 일정 정도의 월급을 받기 때문에 수익을 내야 한다는 의무감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덕택에 환자에게 필요한 치료만 하게 될 뿐 아니라 예방에도 신경쓸 수 있게 된다. 실제로 대전의료생협 치과에서 근무할 예정인 치과전문의 김호상 원장은 조합원들에게 남긴 글에서 “진료자와 환자의 신뢰를 바탕으로 의료보험 치료나 다양한 치료방법을 제시하겠다”며 “환자 스스로 선택하게 하는 한편 필요한 경우에는 적극적으로 방법을 제시, 당장에 드는 진료비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을 진료자가 아는 한도 내에서 최선을 다해 찾아주고자 한다”고 적었다. 그는 이어 “치료 하나 더 하는 것 이상으로 예방을 위해 할 수 있는 부분을 찾고자 한다”고 강조했다. 그의 목표는 단 한 가지라고 한다. 바로 “병원에 온 사람이 아프지 않고 웃고 나가는 것”이다.
과연 이런 형태의 치과가 제대로 운영될 수 있을까. 대전의료생협은 안성의료생협의 성공을 염두에 두고 있다. 1994년 국내 최초로 문을 연 안성의료생협은 양방과 한방에 이어 2001년 치과병원의 문을 열었다. 그동안 운영상의 문제로 적자를 면치 못했으나, 지난해 2월 새로운 출발은 한 뒤부터는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다. 1일 평균 16명이었던 환자 수는 지난해 29명으로 늘어났다. 이곳을 찾는 환자가 늘고 있다는 이야기다. 덕택에 지난해에는 3000만 원의 순이익도 냈다. 환자가 밀려들면서 환자가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지자 조합원의 불만이 늘어났고, 올해에는 치과의사 2명을 충원했다. 올해 환자 수는 하루 평균 40여 명으로로 늘었다.
안성의료생협 치과 주민들 호평
3월 14일 찾아간 안성의료생협의 생협치과는 환자로 붐비고 있었다. 이를 뽑으러 왔다는 지역주민 김인배씨(60)는 “주변에서 추천을 받고 찾아왔는데 여기서는 현재 상황과 치료방법을 자세히 설명해준다”며 만족한 표정이었다. 그는 이날 혈압을 재고 마취를 한 다음, 썩은 치아를 빼는 치료를 받았다. 현석환 원장은 썩은 치아를 보여주며 “이게 뿌리까지 썩은 겁니다. 상한 지 오래 됐는데 늦게 오셨어요. 다른 이도 현상유지하시려면 이를 닦는 게 중요합니다. 계속 치료받으러 오세요”라고 말했다.
이곳에서 치료를 받은 문순화씨(53·여)는 생협치과를 방문한 뒤 믿음이 생겨 조합원으로 가입했다. 문씨는 과거 어금니 세 개 중 가운데 어금니가 빠져 양쪽 어금니를 깎아 치아를 걸치는 보철치료를 받았는데, 지난해 이상이 생겼다고 한다. 수년 동안 다니던 단골치과를 찾았는데 남아 있는 어금니 두 개를 뽑고 임플란트를 해야 한다는 권유만 받았다.
실망한 그는 생협치과를 방문했다. 그동안 생협 한의원에 다니면서 믿음이 생겼기 때문이다. 과연 생협치과는 달랐다고 한다. 엑스레이를 찍은 뒤 남아 있는 두 개의 어금니 중 하나는 뽑고 하나는 살려보자는 ‘긍정적인’ 진단을 들을 수 있었다. 임플란트에 대한 설명 뿐 아니라 보철을 통해서도 어느 정도 치료가 가능하다는 설명도 이어졌다. 가장 마음에 들었던 것은 환자의 경제적 상태를 배려하는 태도였다고 한다. “치료에 돈이 많이 드는 만큼 장기간 계획을 세워보는 게 어떻겠느냐”고 권유받았다고 한다. 문씨는 믿을 만하다고 생각, 조합원에 가입했다.
지난해 2월부터 이곳에서 근무하고 있는 현석환 원장은 “조합원이 주인인 곳에서 월급을 받고 일하기 때문에 이윤을 추구해야 한다는 짐을 덜었다”며 “개인의 이익을 위한 시설이 아니기 때문에 환자에게 보다 유리한 쪽으로 해석하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 다른 병원에 비해 치료비 자체가 싼 것은 아니다. 조합원에게는 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부분에 한해 10% 할인혜택을 주지만, 치료비 자체는 비슷하다. 다만 현 원장의 이야기처럼 최대한 환자의 편에 서서 치료한다.
안성의료생협의 김보라 사무국장은 스케일링을 예로 들었다. 스케일링은 치료목적이 아닌 경우 보험적용을 받지 못한다. 그런데 생협치과에서는 스케일링 환자에 보험을 적용하려고 노력한다. 잇몸치료를 계속해야 한다는 단서에도 환자가 병원에 나오지 않으면 정부로부터 차액을 받아내지 못한다. 한 달에 보험청구를 700만~800만 원 정도 하는데, 스케일링 부분에서 삭감되는 게 100만 원에 달하고 있다.
적은 월급 때문에 전문의 확보 어려움
이런 시설이 많아지면 지역주민에게는 큰 혜택이 된다. 하지만 아직 전국적인 확산은 어렵다. 인력문제 때문이다. 의사 중에서도 치과전문의의 월급은 높은 수준이다. 그런데 아직 우리나라의 의료생협은 저변이 넓은 편이 아니라 재정이 넉넉하지 않다. 안성의료생협의 현석환 원장은 지난해 1년 동안 치과전문의가 받는 월급의 절반 정도만 받고 일해왔다. 대전의료생협 치과에서 근무할 김호상 원장도 마찬가지다.
적은 월급을 받으며 이곳에서 ‘봉사’하려고 하는 이들이 나타나지 않는 이상 생협치과 개원은 어려운 상황이다. 대전의료생협만 하더라도 2002년 문을 연 이래 조합원들의 치과개원 요구가 지속적으로 있었지만 본격적인 움직임이 시작된 것은 김호상 원장이 이 곳에서 근무하겠다는 뜻을 밝힌 지난해부터였다. 대전의료생협은 운이 좋은 편이다. 다른 지역은 나서는 의사가 없기 때문이다. 한국의료생협연대 박봉희 사무총장은 “치과를 개원할 만한 재원이 없는 것도 문제지만 이곳에서 근무할 인력이 없는 것은 가장 큰 문제”라고 말했다.
안성의료생협은 새로운 실험을 하고 있다. 월급수준을 대폭 인상한 것. 인력수급을 자유롭게 하자는 뜻에서다. 물론 외부 월급의사에 비하면 낮은 수준이긴 하다. 그러나 모자라는 부분은 참된 진료를 할 수 있다는 만족감에서 보완할 수 있다는 게 안성의료생협의 생각이다. 이 경우 주인인 조합원이 원하는 것들을 의사들에게 적극적으로 요구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인력문제가 해결되고 대전의료생협이 성공만 거둔다면 전국 9곳의 의료생협 중 나머지도 치과개설을 추진할 가능성이 있다. 긴 시간 동안 기반을 다져놓은 안성의료생협의 생협치과의 성공과 후발주자인 대전의료생협의 성공은 의미가 다르기 때문이다. 대전의료생협 김성훈 사무국장은 “안성의료생협이 양·한방으로 시작하자 나머지 의료생협이 모두 양·한방 체제를 갖춘 것처럼 대전 지역에서 치과가 성공하면 다른 지역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의료생협 전국 9곳서 운영
의료생협이란 지역사회의 주민이 건강, 의료와 관련된 문제를 해결하고자 조직한 자발적인 협동조직이다. 의료생협은 의료기관을 설립해 치료뿐 아니라 예방보건활동도 활발하게 하고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의료생협은 1994년에 설립된 안성의료생협인데, 1987년 연세대 의대 기독학생회가 시작한 농촌활동이 계기가 되어 조직됐다. 안성의료생협이 농촌모델이라면 1996년 설립된 인천평화의료생협은 도시에서 성장하고 있는 도시형 의료생활협동조합이다. 현재는 안성과 대전을 비롯해 전국 9곳에 의료생협이 활동하고 있다. 양·한방이 중심으로 현재 치과가 개설된 곳은 안성의료생협이 유일하다. 가장 오래된 까닭에 안성지역이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으며 나머지 지역은 재정적인 어려움이나 주민의 비참여로 고민하고 있다고 한다.
의료생협이 추구하는 목표는 한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바로 1·2·3차 의료기관을 운영하는 의료생협으로의 성장이다. 50여 년 전 의료생협 활동을 시작, 잘 발달한 일본에서는 쉽게 발견할 수 있는 형태다. 가장 모범적인 곳으로 알려진 사이타마의료생협은 주민 18만6000여 가구 중 7.1%가 조합원으로 가입해 있으며 3차 의료기관을 포함, 56개의 사업소를 운영하고 있다. 치과개설을 통해 새로운 도약을 꿈꾸고 있는 대전의료생협도 이런 모델을 지향하기는 마찬가지. 이들은 치과개설을 앞둔 지금 날마다 모여 점심을 먹기 전 100일 기도를 한다. 3월 14일 신현정 대전의료생협 부이사장이 작성한 기도문은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지역주민의 출자금으로 설립된 대전시와 충청남도를 아우르는 민들레 중앙의료원과 각 시군구 병원, 그리고 각 마을마다 설립된 진료소, 의원. 상상만 해도 즐겁지 않으세요.” 조합원의 적극적인 참여만 있다면 즐거운 상상은 상상만으로 그치지 않을 것이다. |
<대전/정재용 기자 jjy@kyunghyang.com>
출처: 주간경향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33/0000008329?sid=1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