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적 배경 2~3세기 로마시대 다양한 사상들이 혼합된 철학과 종교가 생겨나던 절충주의 시대 그리스 신과 이집트 신의 결합, 로마인들의 황제 숭배, 일개 교단에 지나지 않았던 그리스도교 등 플라티누스 만물의 원천으로서, 인간이 회귀해야 하는 근원으로서의 신 플라톤 철학을 받아들임 그가 죽은 후에 포르피리오스에 의해 <엔네아데스(Enneades)> 신은 복합성도 없으며 절대적인 동일체인 일자(the One) <일자는 존재하는 어떤 사물일 수 없으며 모든 현존재에 선행한다>. 속성은 유한한 물질적 사물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에 일자의 속성은 없음 일자인 신은 모든 차별의 초월을 의미 인식의 전과 후에 달라지는 변화를 내포할 수 없는 신은 하나이며 절대적인 통일체 유출설 태양에서 가장 가까운 빛이 가장 밝은 것처럼 최상의 존재 형태는 제일 먼저 유출 최초의 유출물은 정신(nous), 사유나 보편적 지성, 세계의 토대를 이루는 이성 능력 누스 (순수 이성 능력) -> 세계의 영혼 -> 인간의 영혼 -> 물질세계 관념과 영혼 뒤에 물질적 세계가 존재 어둠의 지점에서 물질은 비존재 악은 아름다운 초상화의 어두운 부분 신은 악의 원천 세계의 물질 때문에 영혼이 더욱 높은 목적을 향할 수 있다는 것이 핵심적인 통찰 세계는 철학과 과학에서 처럼 영혼을 지적인 활동으로 승화시키는 수단
지식의 사다리를 모두 올라가면 자아와 일자, 즉 신과 합일에 도달하는 무아의 경지
플라톤적 이원론이 갖는 모순('이데아계'와 '현상계'를 어떻게 관련 맺게 할 것인가)의 한 가지 해결책 '일자(신)', '누스(정신)', '프시케(자연)'의 세 원리는 인간의 사고의 반영(초월적인 동시에 내재적(內在的))
헬레니즘의 철학
4세기 말, 그리스 문명이 쇠퇴하여 로마 제국 시대에 형성된 철학 강력한 제국주의의 영향 아래 집단에 대한 개인의 통제력이 상실된 인간으로서 필요한 실천철학 직접적인 개인의 세계에 대한 관심 에피쿠로스, 스토아, 회의주의, 신플라톤주의 등 에피쿠로스 (Epicuros) 데모크리토스의 자연 철학에 영향 <세계가 무엇으로 만들어졌는가>와 같은 본질적인 문제를 다루지 않음 세계가 무엇으로 구성되어 있다면 그것으로 인간의 행동에 어떤 결과가 초래되는가가 문제
신의 명령에 따른 행동 원리 대신 육체와 정신의 쾌락을 위한 개인의 욕망에 초점을 둔 개인적인 도덕 체계 <쾌락은 선한 것이지만, 모든 쾌락이 선한 것은 아니다> 인간을 가장 행복한 삶으로 인도하는 쾌락을 그렇지 않은 쾌락과 구별하는데 최대의 주안점 <쾌락은 육체의 고통과 정신의 불안에서 자유를 의미한다. 그것은 취할 것을 취하고 금할 것을 금하는 동기를 탐구하거나 정신이 매우 혼란할 때 생기는 잘못된 의견을 떨쳐 버리는 건전한 사유다.> 인간의 본성이 추구하는 궁극적인 쾌락은 마음의 평정(아타락시아 ataraxia)
행복은 삶의 목표를 실현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수단적 가치가 아니라 수단과 목적이 서로 나누어질 수 없는 궁극적 가치 에피쿠로스는 인간 사회에 관심 갖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쾌락에 관심 스토아(stoa) 철학 기원전 300년 제논(Zenon)이 세운 학파 키케로, 세네카, 에픽테토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스토아 학파의 도덕 철학도 행복의 추구가 목표, 쾌락이 아니라 지혜를 통해 추구 <사건들이 당신의 의도대로 일어나기를 바라지 말라. 오히려 일어나는 대로 진행되기를 원하라. > <두려움 외에 우리가 두려워할 일은 없다.> 세계는 인간과 물질적 사물이 목적의 원리에 따라 질서 정연한 배열 장소 신을 자연 전체, 즉 모든 사물 안에 존재하는 이성적 실체(logos)라고 생각 스토아 사상은 자연에 기반을 둔 유물론이자 운명론이며 범신론 (자연 전체가 이성의 원리로 가득 차) 일치된 물질의 행위가 곧 자연적인 법칙이며 사물의 본질에 대한 법칙 신은 로고스, 즉 이성이기 때문에 인간과 모든 자연도 이성적 구조와 질서에 참여
인간이 엄밀한 법칙을 알고 필연적으로 이해한다면 무리하지 않고 역사와 보조를 맞추어 나아갈 것 행복은 선택의 결과가 아니라 이미 정해진 대로 되어야 하는 과정에 묵묵히 따르는 데서 비롯 아파테이아(apatheia): 주관적인 감정(pathos)이 부재된 상태로 일체의 인간적 감정에서 초연한 상태 스토아 학파는 전체와 조화를 이루는 세계주의, 만인이 같은 인간 공동체의 시민 로고스(이성)를 통해 신과 공통된 법과 정의를 인간과 인간이 서로 공유 보편적인 형제애와 보편적인 정의에 대한 이론은 종족, 혈통, 빈부, 귀천에 관계없이 이성적 공동 생활을 영위 주장 자신의 공동체와 전 인류로 확대할 세계주의 주장 로마제국의 정치적 사상과 다음 세대의 그리스도교 철학의 발전에 결정적 영향 에피쿠로스 학파와 스토아 학파의 관점 비교 세계 속에서 우리가 어떻게 존재하고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두 가지 전형적인 방식 에피쿠로스 학파의 개인주의적 도덕 철학을 따를 것인지, 스토아 학파의 세계 전체의 질서를 따르는 삶의 영위할 도덕철학을 것인지 , 제국의 시대인 헬레니즘 시대가 요구
디오게네스: 개처럼 살라 대왕: 내가 두려운가? 디오게네스: 그러면 대왕은 착한 사람입니까? 대왕: 그렇다. 나는 착한 사람이다. 디오게네스: 어떤 사람이 착한 사람을 두려워하겠습니까? 대왕: 디오게네스, 그대는 여러 가지 물품이 부족한 것 같은데 나는 그대를 위해 봉사하는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 디오게네스: 그렇다면 당신이 서 있는 그곳에서 좀 비켜주시오. 대왕은 나에게 내리쬐는 햇볕을 가로막고 있습니다. 키니코스학파(견유학파) 소크라테스에게서 사상을 물려받았다. ‘선한 사람에게는 어떠한 해악도 닥쳐오지 않는다’는 소크라테스의 사상을 수용 발전 ‘선한 사람에게는 어떠한 해악도 닥쳐오지 않는다’는 의미: ‘인간은 자기 자신의 능력을 넘는 사건에 대한 감정적 얽매임이나, 재난의 공포나, 외적 사물에 대한 욕망이나, 타인들이 좋아하고 싫어하는 성향에 의해 좌우되는 태도로부터 벗어나야’고 얻을 수 있다는 디오게네스 해석 디오게네스(또는 그의 아버지)가 화페를 손상한 죄로 투옥 : 이 세상에서 통화와도 같이 유통되고 있는 온갖 인습을 타파하고자 했기 때문에 전해지는 전설 문명: 제멋대로의 기준과 미신에 의해 뒷받침된 퇴폐적 제도 따라서 정부, 사유재산, 결혼, 기성종교, 풍습, 옷차림, 집, 음식, 예절 등 모든 전통적인 관습 거부 그가 문명을 거부한 이유: 1) 당시 만연된 물질문명을 비판 2) 사회 질서보다 완전한 개인의 자유 보전 그는 물질문명의 무가치함을 다음과 같이 말했다. 소식(小食)으로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가? 겨울에 비싼 옷을 걸치지 않아도 인간은 따뜻하게 지낼 수 있지 않은가? 고국에 대한 애착심을 갖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그러면 그가 말하는 행복은 어떻게 찾을 수 있는가? 디오게네스: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이 행복이라네. 제자: 그러면 그러한 행복과 자유를 가져오는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디오게네스: 그것이 바로 자연적인 삶 그 자체에 있네 제자: 그러면 자연적인 삶은 어디에서 나옵니까? 디오게네스: 그러한 삶은 동물의 행동을 관찰하고 모방하는 데서 나오는 것이네. 디오네게스는 개와 같은 생활태도에서 덕을 찾았다. 개는 아무런 부족을 느끼지 않고, 육체적 기능에 관한 거짓된 수치심도 없고, 위선도 없기 때문 개인들은 욕망에서 나오는 인습, 기술, 제도에서 해방되어 마침내 도덕적인 자유를 찾는 것 현대에 만연한 물질적 이기주의 문명에서 인간생활이 복잡해지고 인위적인 것들로 가득 채워져 있다. 물질 속에 헤어나지 못하는 현대 인간들을 향해 욕심부리지 말고 자연스럽게 ‘개처럼’ 살라고 말하고 있다. 쾌락과 고통에 흔들리지 않고, 자연적 사건이나 사회적 사건에 의해 당황하지 않고, 시민적 또는 인간적 유대에도 관심을 놓으며, 질서나 권위를 조롱하며 초연히 고립적 생활을 즐기는 것이 행복을 가져온다. 그는 스토아 학파(아파테이아, 주관적 감정에서 초연한 숙명론)의 원조, 후에 그의 사상은 그리스도교 사상에 침투(은둔수도자) 회의주의학파: 판단중지 퓌론 B.C. 365~275 섹스투스 엠피리쿠스 A.D. 250년경 회의주의자의 어원, 고대 그리스어 skeptikoi는 추구자, 탐구자들이라는 뜻 이 학파를 발전시킨 퓌론은 B.C. 327년경 알렉산더 대왕과 인도정복 원정길에 올라 인도에 머무는 동안 극도의 고행을 통해 열반에 이른 불교의 수행자를 보았다. 퓌론은 불교 수행자들에게 영향을 받아 금욕과 절제를 통해 영혼의 평정에 도달하게 하였다. 회의주의학파는 소크라테스의 무지의 언명(무지를 아는 것이 앎의 시작이다)에서 영향을 받았다. 회의주의의 근본 원리는 모든 명제에 대해 반대되는 명제가 있다는 것이다. <현상>을 경험하는 사람들이 제각기 다른 설명을 제시한다. <독단론에서 빠져나오면 우리도 할 일을 다한 것이다> -섹스투스 긍정도 부정도 않고 판단을 보류하는 이유: 서로 반대되는 논거들 사이에 동등한 힘이 있다. 그것은 반대되는 논거를 설명하는 개연성을 신뢰하는 정도가 같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회의주의자들은 판단을 보류하며 어떤 것을 부정하지도 긍정하지도 않는다. 판단을 중지함으로써 혼란하지 않고 평온한 정신 상태에 도달하고자 했던 것이다. ‘인간이 때가 되면 배가 고프고’ ‘배고프면 먹고’ ‘낭떠러지 가까이 가면 위험하다’는 자명한 사실, 감각적 지각의 명백한 사실 등을 부인하지 않았다. 그들 자신들이 실재 세계에서 살고 있음을 의심하지 않았다. 단지 이 세계를 정확하게 기술하는지에 대한 의심이 있을 뿐이었다. 문제는 현상을 문제 삼는 것이 아니라 ‘현상에 대한 설명’을 문제 삼고 있다. 문제는 <물질적 대상이 겉으로 보이는 그대로 실재 속에 있는가> 하는 것이다. (시간에 따라 달리 보이는 풍경, 어떤 사람에게 꿀은 쓰다) 만물을 물질로 보는 스토아 학파의 유물론에 따라 우리의 지식이 (물질적) 경험이나 감관에서 비롯된다면 회의주의자들은 감관을 통해 얻은 지식의 타당성을 회의할 이유가 더욱 충분 경험과 감관으로 정확성과 진리의 기준을 정할 수 없다. 그렇게 정한다면 우리 지식의 대부분은 참인지 아닌지를 밝힐 수 없는 회의주의의 결론에 도달 스토아 학파는 만인이 공유하는 보편적인 이성과 보편적인 도덕 원리에 대한 검증을 ‘불가항력적인(인간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지각’으로 인정한 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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