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대덕구에 위치한 민들레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전경./사진=박창호 기자
국민기초생활 수급자, 수급권자 소득수준 이하의 국가유공자, 장애인 복지법에 의거해 등록된 직장인….’
대전의 한 영구 임대아파트의 신청 자격이다. 올해 1월에 나온 대전시 대덕구 법동의 영구임대 입주자 모집공고의 자격을 보면 ‘생계의료 급여수급자’가 우선이다. 실제 입주자를 봐도 노인과 장애인의 비율이 높다. 저소득층 노인들은 고혈압, 당뇨 등 만성질환을 가진 경우가 많고, 의료비 지출도 많아 경제적 부담도 크다.
‘민들레의료복지사회협동조합(이하 민들레의료사협)’ 건물의 바로 길 건너편에는 1990년 입주를 시작한 1488세대의 영구임대 주공아파트가 있다. 지난 2002년 의료 사각지대 지원을 위해 설립된 민들레의료사협은 이곳 입주민들의 건강 증진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시도 중이다.
민들레의료사협은 그동안 지역주민의 건강 문제를 지역사회의 다양한 관계망을 통해 해결하고, 주민들이 안정적인 생활을 유지해나가는 방법을 지향해왔다. 단순한 치료 외에도 평소 생활습관을 분석해 환자들에게 필요한 건강관리법을 알려주고, 다양한 건강 강좌나 예방 교육 서비스와 연결해주고 있다.
이 방식은 민들레의료사협의 주도로 지역의 다수 구성원인 저소득층 노인들의 건강을 돌보며, 지역 내 다른 사회적경제 기업들의 서비스와도 연계해 주민 참여 및 일자리 창출까지 가능하도록 한다. 이러한 노력을 인정받아 지난 2018년 산업자원부 ‘사회적경제 사업 우수모델’로 선정돼 장관 표창을 받기도 했다.
‘건강증진 커뮤니티’ 운영해 지역 노인들 돌본다
지속적인 건강 증진활동을 유도하는 건강반 참여를 통해 지역주민들이 자신의 건강을 스스로 관리하고 지니고 있는 만성질환을 호전시킬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사진제공=민들레의료사협
현재 민들의료사협은 법동 주민 400여 명이 참여하는 ‘건강증진 커뮤니티’를 운영 중이다. 만성질환 개선 등 비슷한 건강 증진 목표를 가진 주민들이 커뮤니티를 형성해 정서적 지지를 얻을 수 있도록 돕는 프로그램이다.
예를 들어 이곳 임대아파트에 거주하는 P할아버지는 평소 고혈압을 앓는 80세 기초수급 독거노인이다. 부인도 없는 무연고의 삶을 살아 우울증도 심한 편이었다. 민들레의료사협 소속 돌봄 매니저의 방문상담을 통해 P할아버지가 기초수급 급여 등 돈 관리를 잘하지 못해 관리비가 체납됐고, 이로 인한 압박감으로 우울감이 심해졌다는 사정을 알게 됐다.
‘돌봄 플랜’을 통해 할아버지의 고민을 해결하는 한편, 고혈압 관리를 위해 민들레의료사협이 운영하는 주민건강 증진센터 ‘건강반’에 들어가 체계적으로 할 수 있도록 도왔다. P할아버지는 1년이 경과한 시점, 관리비 미납분을 청산했고 혈압약을 줄여도 될 만큼 건강도 호전됐다.
돌봄이 필요한 취약계층에게 매니저의 전문적 상담을 통해 계획을 세우게 하고, 건강과 일상생활 관리 능력을 키우도록 지원하는 것이다. 이처럼 주민참여 건강증진 커뮤니티와 커뮤니티 케어 활동에는 주민과 관리자, 사회복지사, 간호사 등 지역의 다양한 주체가 참여하게 된다.
ICT 솔루션 통한 임팩트 확산 및 사회적경제 일자리 창출
개발 중인 주민참여 건강증진 커뮤니티 활성화를 위한 커뮤니티 케어 지원 ICT 솔루션의 모바일 시제품 이미지./사진제공=민들레의료사협
‘정보통신기술(ICT) 솔루션’은 이러한 프로그램의 운영을 효율적으로 뒷받침하는 디지털 기반이자 자원이다. 세계보건기구(WHO)의 국제 기능·장애·건강 분류(ICF)와 같은 글로벌 보건의료 표준이 지역주민을 위한 돌봄 플랜 추천의 근거가 될 수 있도록 관련 알고리즘을 구성해 구현하는 것이 주요 골자다.
이러한 ICT 솔루션의 개발을 위해 민들레의료사협과 충남대 산학협력단, 간호대학의 전문가들이 지역사회의 건강 관련 요구와 문제 도출, 건강목표 수행 활동 등의 설계 등 다방면의 작업에서 머리를 맞댔다. 디자인된 솔루션을 모바일 앱으로 구현하는 작업은 지역 ICT 분야 사회적기업인 ‘봄소프트’가 맡았다.
P할아버지의 사례에 대입해보면, 고혈압과 우울증에 맞는 맞춤형 건강관리 목표를 설정해 관리하고, 건강반 등 주민 커뮤니티 활동에 참여하는 데 ICT 솔루션이 활용된다. 사회복지사로 구성된 돌봄 매니저들이 의료근거에 기반한 계획을 제시하면, 추천 내용이 P할아버지에게 전달된다. 이 과정에서 자연히 신뢰도가 높아지고, 동기부여와 실천 의지를 강하게 만드는 효과가 있다. 보험 설계사가 태블릿을 이용해 분석과 상담을 진행하며 고객에게 핵심을 짚어주는 것과 비슷하다.
ICT 솔루션 개발이 진행된 올해 7월부터 11월까지 5개월간 지역사회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한 건강반 운영 결과, 건강반의 활동이 참여자의 신체활동에 긍정적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돌봄 매니저의 개입과 중재가 참여에 긍정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분석됐다.
이렇게 만들어지는 디지털 자원은 대덕구의 공동체 지원센터나 보건소는 물론 타 지역에도 전파될 예정이다. 민들레의료사협은 지난 11월 5일 한국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연합회와 지역주민의 건강실천 및 건강증진을 위한 협약을 맺고, 25개 회원사를 통해 주민참여 기반 건강증진 통합운영 시스템의 활용·교육·홍보에 협력하기로 뜻을 모았다.
대전 지역주민 10명은 올해 5월에 건강리더 협동조합을 창업했다./사진제공=민들레 의료사협
사회적기업이 만드는 임팩트를 규모화하는 방안에 대해 전문가들은 ‘확장’ ‘복제’ ‘파트너쉽’ ‘지식공유’ 등의 방법을 말한다. 민들레의료사협이 현재 개발 중인 ‘커뮤니티 케어 지원 ICT솔루션’은 향후 주민참여 건강증진 커뮤니티 활성화라는 소셜 임팩트의 규모화(scale)에 큰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전문가들은 표준화된 제품을 만드는 보통의 일반 기업들과 다르게 사회적기업의 제품과 서비스는 노동집약적이고 개인화되어 있어 전달(deliver)에 어려움이 있지만, ICT 솔루션을 기반으로 하는 경우는 다를 수 있다고 본다.
국현정 민들레의료사협 주민참여건강증진센터장은 “현재 개발 중인 ICT 솔루션이 주민참여 건강증진 커뮤니티 활성화라는 소셜 임팩트의 규모화(scale)에 앞으로 큰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를 한다”고 말했다.
또한 지역의 다른 사회적기업들을 프로그램에 연계하고, 주민 참여와 일자리 창출까지 가능하도록 하는 시도로 확장하고 있다. 요양보호사 자격이 있는 지역주민 10명이 올해 5월에 창업한 ‘건강리더 협동조합’, 심리상담 분야 예비사회적기업 ‘마음의 숲’, ‘바른자세 365’ 등 사회적경제 기업의 여러 서비스를 ICT 솔루션에 연계하는 것이다. 지역주민의 건강증진과 사회적경제의 육성을 통한 지역 일자리를 함께 만드는 실험이 활발히 진행 중이다.
<미니 인터뷰> 국현정 민들레의료사협 주민참여건강증진센터장
국현정 민들레의료사협 주민건강증진센터장./사진=박창호 기자
Q. 이번 사회적경제 혁신사업 성장사업을 통해 기대하는 바는?
▶커뮤니티 케어 관점에서 좋은 지역사회가 되려면 지역사회가 사회적 약자를 이웃으로 포섭하는 치료적 지역사회가 되어야 한다. 민들레의료사협은 2002년부터 사회적협동조합의 방식으로 대전 법동에서 취약계층의 건강증진을 위해 노력해왔다. 그동안 축적한 경험에 현재 개발 중인 ICT 솔루션을 잘 접목하면, 지역사회의 문제를 사회적경제를 기반으로 보다 혁신적으로 해결하고 나아가 규모화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한다.
Q. 향후 해당 사업 개발과 활용에 대한 계획은?
▶우선 2차년도인 내년까지 계획된 ICT 솔루션 개발을 잘 마무리하는 게 중요하다. 이후에는 대전 지역 보건·복지 분야 공공기관이나 타 지역의 의료사협이 이를 활용할 수 있도록 교육·홍보 활동을 진행할 생각이다. 국내에서 활용이 잘 진행되면, 우리보다 경제적 상황이나 의료복지 여건이 더 어려운 나라들을 돕는 데도 활용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Q.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얼마 전 전공의 집단휴업이 끝난 뒤 어느 사회의학자가 한 신문에 기고한 ‘의대생은 학교를 떠나라’라는 칼럼이 생각난다. 칼럼에는 “의대생은 의대를 떠나 용감하게 낡은 오토바이에 올라라. 함께 할 친구가 있다면 더욱 좋다”라고 쓰여 있었다. 스스로 건강을 잘 관리하지 못하는 고령의 취약계층에게는 치료와 더불어 서로 지지가 되는 관계망의 형성·유지도 매우 중요하다. 민들레의료사협이 법동에서 그런 일들을 돕고 있다. 지금도 여러 친구들과 함께 일할 수 있어 좋지만, 새로운 친구들은 언제나 더 많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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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기술이 협업하는 커뮤니티케어 모델을 만듭니다” < 첨단기술이 사회적경제를 만나면? < 기획 < 기사본문 - 이로운넷 (eroun.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