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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11일 대청호가 내려다보이는 대전시 동구 추동에서 생명평화탁발순례단장인 도법스님을 만났다.
장맛비를 맞으며 계족산을 넘은 생명평화탁발순례단은 저녁 무렵 한밭레츠와 민들레의료생협 회원들과의 생명평화기원 100배를 올렸다. 순례단은 마을 주민이 탁발한 저녁을 함께 먹고 잠시 숨을 돌렸다.
비를 맞으며 산을 넘은 탓인지 스님은 약간 지쳐보였다. 그러나 사람을 바라보는 눈빛이 따뜻했고, 웃을 적마다 고른 이가 드러나 천진스럽게 느껴졌다. 나는 자기 소개를 한 뒤 조심스레 인터뷰를 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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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법스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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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현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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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리산에서 순례를 시작하여 이제 3년이 넘었다. 생명평화탁발순례를 결심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하나는 내 개인적인 필요에서, 두 번째는 시대적인 필요에서였다. 부처님의 일생 자체가 순례의 삶이었다. 불교사적으로 보면 고승들은 자기완성과 사회완성을 위하여 헌신하는 것을 전통으로 삼았다. 승려라면 누구나 탁발순례를 꿈꾼다. 나 역시 출가한 후 그같은 개인적인 소망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이 실현된 것이다.
순례는 구체적으로 20세기를 마감하고 21세기를 시작하면서 구상하게 되었다. 최근 100년의 인간 역사는 황폐하기 그지없다. 여기서 두 개의 물음을 할 수 있다. 왜 이런가, 이것이 변화 발전인가? 지금껏 생명의 위기와 평화 위기를 자초했던 삶의 방식을 버리고, 21세기에는 살림과 평화의 방식으로 문명을 이루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평화'란 말은 흔히 해도, 개인도 사회도 평화롭게 문제를 풀지 못한다. 일상적 평화를 도외시하고 있다. 반전평화를 외치면 뭐 하나? 도처에 성폭력, 가정폭력, 외국인노동자에 대한 폭력이 존재한다. 베트남전을 상기한다면 일본이나 미국을 나무랄 수 없을 것이다. 나는 일상의 평화가 중요함을 말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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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동에 사는 초등1학년 장난꾸러기 상진이도 절을 올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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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현주 |
- 2003년부터 순례를 시작한 이유가 있나?
"2003년 이라크전이 발발했다. 우리 국민이 그 전쟁을 대하는 무력감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국가도 정부도 힘이 없어서 우리의 운명이 누군가에 의해 좌우된다는 사실, 전쟁에 처한 운명의 당사자와 군대를 보내야하는 한반도의 당사자가 아무런 힘이 없었다는 것. 그것이 참담한 무력감을 들게 했다.
세계시민의 마음을 어떻게 움직일 것인가. 전쟁이 나도 피난가지 않고 자기의 전 존재를 버리고 비폭력 행동을 할 수 있는 사람 10만 명만 존재한다면 그런 무력감 따위는 날려버릴 수 있을 것 같았다. 생명평화운동 진영에서 긴 논의 끝에, 늦었지만 지금부터라도 그 10만 명을 길러내는 방법을 모색했다. 그 방법으로 현장 순례를 선택하게 되었고 그 순례는 범종교 시민사회가 함께하기로 했다."
- 순례 첫해와 3년이 지난 지금, 달라진 점은 무엇인가?
"내부적으로는 생명평화운동 진영의 역량이 탄탄해졌다. 사회적으로는 생명평화 인식이 대중화되고 있음을 느꼈다."
- 순례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냐는 비판의 목소리도 있는데.
"(웃음) 뭔 헛짓거리냐는 말 많이 들었다. 시간이 필요하다. 깊은 대화를 하다 보면 이해하게 된다. 근본문제가 안 풀리는데, 문제를 아무리 해결하려 해도 해결이 되나."
- 현재 우리나라 환경운동단체가 보강해야 할 점은?
"삶의 철학이 약하다. 모든 운동은 삶을 바꾸는 운동이 되어야 한다. 회원 개개인의 삶의 가치와 철학을 세워주고, 생활 방식을 건강하게 만드는 것을 근본으로 삼아야 한다. 삶의 변화를 꾀하지 못하면 한계점에 다다른다. 활동가들도 일을 하면서 자기 주체가 사라지면 지친다. 정부·기업 대상에서 국민 대중 대상으로 운동을 해야 한다. 근원적인 고민을 해야 한다."
- 우리나라는 정부나 기업이 일으키는 환경사안이 너무 많아 싸우지 않을 수 없지 않은가?
"그렇다. 그러나 이제는 긴 호흡으로 가야한다. 문제의 본질을 잘 짚어야 한다. 정부와 기업과도 동반자적 자세를 취해야 한다. 싸움 일변도와 소모적 논쟁에서 벗어나야 한다."
- 이제 모든 인간이 평등하다는 것은 교과서에도 나온다. 인간은 과거에 비해 진보하지 않았는가?
"생명평화의 조건이 더 풍부해져야 진보라 말할 수 있다. 자신을 알고 다루는 방법은 퇴보했다. 세월은 흘렀어도 인간은 다람쥐 쳇바퀴에서 한 발짝도 벗어나지 못했다. 인간이 진보했다면 핵무기 따위를 만들었겠는가."
- 생명평화의 조건이 무엇인가?
"평화의 조건으로는 올바른 이해, 환경적·생리적·사회적 조건이 있다. 평화는 목적이 아니라 끊임없는 과정이다. 평화의 조건이 만들어지는 만큼 평화가 존재한다. 조건이 만들어지면 있고 만들어지지 않으면 사라진다. 끊임없이 자신을 낮추고 비우고 상대의 개성과 가치를 존중하고 이해하는 데서 평화는 시작되고 가꾸어진다.
주체적 세계관과 철학, 가치의식을 키우기 위해 우리는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한다. 자기 혁명에 기초하지 않는 사회혁명은 성공하더라고 지속되기 어렵다. 평화를 위한 전쟁은 결코 평화를 가져오지 못한다는 것을 역사가 증명한다. 평화를 유지하는 것이 힘의 균형이라고 생각하고 있으나 이것도 크게 잘못되었다. 지금 세계를 보라. 그 힘의 균형을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죽을 지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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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청호 순례 도중 꿀맛 같은 낮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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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현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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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슨 공부를 해야 하나?
"자기 자신에 대한 공부를 해야 한다. 사람들은 대상에 대한 공부는 많이 한다. 자동차·증권·학문적 지식, 정말 모르는 것이 없을 정도로 풍부한 지식을 갖추고 있다. 그러나 정작 자신에 대해서는 무지하다. 자기가 누군지도 모르고, 자기 마음을 다스리는 방법도 모른다. 자신의 모든 문제는 '소견머리'와 '버르장머리'에서 발생한다. 문제의 해결을 보려면, 그 '소견머리'와 '버르장머리'를 고쳐야 하지 않는가.
생명평화탁발순례는 '내가 먼저 평화가 되자'라는 슬로건을 내세우고 있다. 평화로워지는 방법은 무엇인가? 평화에 도달하는 길은 오직 하나, 평화로움밖에 없다. 평화로운 생각, 평화로운 말, 평화로운 행동을 하는 것이다. 일상을 평화롭게 살아야 평화를 얻을 수 있다."
- 혹시 자신이 진정 누구인지 깨달으면 저절로 평화로워지는가?
"그렇다. 당연한 일이다."
- 앞으로 순례를 계속할 계획인가?
"나는 거지중이다. 밥주고 재워주면 어디든 간다."
인터뷰를 마치자 대청호 너른 호숫물에 다시 빗줄기가 떨어졌다. 스님은 비 오고 바람 부는 날은 걸음 옮기는 것에 집중할 수 있어 좋다고 하신다. 도보 순례를 해본 사람은 알 것이다. 그것이 얼마나 놀라운 경험인가를. 살아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가를.
길에서 도법스님의 생명평화 설법을 듣는 사람이 언제쯤이면 10만명이 될까. 온전히 생명평화를 품은 10만명이 생긴다면 참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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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전의 중리시장을 순례하는 순례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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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현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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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센 놈과 싸우고 있다, 더 약아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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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버스, 도법스님과 만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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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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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 깨! 희망은 없어. 왜 있지도 않은 희망을 자꾸 찾아다니는지 몰라. 평화도 그래. 왜 티벳이니 인도니, 그런데를 자꾸 찾아가는지 모르겠어. 다 환상을 좇는 거야. 희망은 내가 만들면 있는거야. 돌아다니지 말고, 가서 직접 만들어."
생명평화탁발순례를 하고 있는 도법스님이 '희망버스팀'에게 툭하니 던진 말이다. 옳으신 말씀이다. 그렇다고 서울로 되돌아갈 수는 없는 일.
14일 오전, 대전의 한밭레츠 사무실에서 1시간여동안 도법스님의 말씀을 듣다가 헤어지면서 "스님. 그럼, 우리 서울로 되돌아갈까요"라고 되묻자 웃으면서 한 말씀하신다.
"희망? 잘 찾아보쇼. 찾으면 나도 한 개 줘!"
16일간 전국을 돌면서 '위기의 시대'를 살아가는 시민운동가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희망버스팀'에게 도법스님이 강조한 이야기는 상생의 방법이다.
"미국이 싫다지만 한국에서 미국을 싹 걷어가면 한국이 생존할 수 있을까. 함께 사는 길을 찾아야 한다. 현실은 다 뒤엉켜져 있는데 이분법적으로 분리시킬 수 있나.
시민운동은 빨리 방법을 터득해야 한다. 가령 통일을 이야기하지 않고 통일의 조건을 확대시켜야 한다. 우리가 반미자주의 깃발을 세우면 저쪽에선 자연히 친미의 깃발을 세운다. 그러나 다수는 깃발을 세우지 않는 사람들이다. 이들을 어떻게 설득할 것인가.
실속없이 깃발만 세우지 말고 좀 영리하게 다가갔으면 한다. 우린 센 놈과 싸우고 있다. 약한 놈이 정면으로 싸우려고 하면 당연히 진다. 약자는 약게, 야금야금 접근해야 한다."
도법스님은 새만금과 천성산을 예로 들기도 했다.
"환경단체들이 욕할지도 모르겠는데, 새만금 싸움 때문에 죽어라 고생했다. 갯벌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도 고양됐고, 정책적으로도 기여한 게 있다. 하지만 새만금은 막혔다. 실속을 차리지 못한 것이다. 천성산도 그렇다. 지율스님이 그렇게 고생했는데…. 천성산을 최소한 보존할 수 있는 타협점이 필요하지 않았을까."
도법스님은 탁발순례를 하면서 들었던 가장 큰 문제의식은 종교인과 지식인의 사회적 책임이란다.
"종교인과 지식인들이 정신 차려야 한다. '부자 논리'에 앞장서고 있지 않는가. 그리고 우린 정치인들하고만 싸운다. 그럼 해결될까. 아니다.
종교인과 지식인, 언론 기관, 교육기관 등이 제 역할을 한다면 나름대로 공론이 형성되고, 그럼 정치인이 이런 여론을 거스를 수 있을까. 그런데 정치인들만 욕을 하고…. 권력감시운동 등 대응도 필요하지만 스스로 실천하는 것도 필요하다. 양수겸장이랄까…."
도법스님은 희망버스팀과 헤어진 뒤 장마전선이 지리산쪽으로 향하던 날, 실상사쪽으로 발길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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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순례 참가 문의: 다음까페 http://cafe.daum.net/daejeonpeace
대전순례준비위원회 간사 김창일 010-3319-7505
<대전순례 일정>
7월/10(월) 생명평화기원 100배
7/11(화) 계족산 넘어 추동까지 순례, 공동체운동과 생명평화 간담회
7/12(수) 대청호 순례, 도법스님 강연
7/13(목) 대전천,유등천 순례, 오전 한살림 강연회(임재택교수), 오후 전교조 간담회
7/14(금) 휴식
7/15(토) 구도심(대동,원동,중앙시장) 순례, 으능정이 서약식 캠페인
7/16(일) 용두동, 영렬탑, 둔산-선사유적지 순례, 대전NCC예배, FTA영화상영
7/17(월) 남선공원-샘머리공원 순례, 으능정이 거리 생명평화등불 서약행사
7/18(화) 계룡산 순례
7/19(수) 현충원, 산내학살지, 식장산 순례
7/20(목) 금강따라 3.4공단까지 순례
7/21(금) 월평공원, 서남부개발권 순례, 종교간 소통을 위한 간담회
7.22(토) 생명평화 기원제, 대전순례종료
- 자세한 일정 http://cafe.daum.net/daejeonpe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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